“대리모 작가를 만드는 출판계 구조, 지식 산업의 황폐화로 전락하는 지름길”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가 대리번역 의혹에 휩싸이며 출판계의 추문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 번역자가 따로 있다”, “이중 번역이다”는 의혹이 짙은 이번 사건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실제 번역자라고 주장하는 김씨와 이중번역을 의뢰했을 뿐이라는 출판사 입장 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일축해버린 정지영씨를 둘러싸고 누가 진실과 거짓을 주장하는지 아직 시원스레 매듭이 풀리지 않았다. 사실상 진실여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출판계가 책 판매에만 집착해 출판윤리를 져버렸다는 비난은 비켜갈 수 없다.

이 논란은 대리번역 관행에 물든 출판업계의 병폐를 반증해준다. 출판계에서는 ‘드디어 터질게 터졌다’는 미지근한 반응뿐이다. 이름 없는 실제의 번역자 대신 유명 인사나 교수의 이름을 내세우는 현 출판계의 대리번역은 공공연한 비밀이자 정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파문으로 인해 대리번역이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으니 자못 의미심장한 일이다.

출판계의 불황으로 인세의 골이 깊어 가고 있는 지금, 문화가 아닌 판매에 방점을 찍어 전략을 모색하는 것은 생존본능일지도 모른다. 분명 정지영의 이름만을 보고 책을 구입한 독자가 있으니 출판계 탓만 할 노릇도 못된다. 독자들의 책 소비문화의 의식도 한 몫 한 셈이다. 독자들은 작품의 질을 가늠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얼마나 유명한가, 표지나 삽화가 얼마나 보기 좋게 꾸며졌느냐가 소비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에 실제 번역을 맡았다고 주장하는 김씨는 ‘1만부나 나갈까 싶었지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용은 좋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에 정지영 아나운서의 이미지가 출판사의 마케팅 성공 전략으로 활용됐다는 지적은 분명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이처럼 진작 독자들의 관심은 출판물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닌 유명인사의 이미지와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출판 생산의 과잉상태로 인해 연예인 혹은 유명인과 책의 공생관계는 분명 스타마케팅 전략이다. 하지만 작품의 질보다는 상품 광고나 이미지가 책 구매 결정의 결정적 조건이 됨으로써 작가의 위치가 위협받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자신만의 색깔이 아닌, 독자의 성향에 종속되어 출판사의 기획에 따라 콘텐츠를 생산해야한다. 이는 기획이 작가의 힘보다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처절한 밥벌이를 위해 대리․ 대필 작가 즉 대리모 작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노력의 대가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는 구조 속에서 작가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외국에서의 대리 번역, 대필도 한국처럼 흔한 일이다. 그러나 외국은 번역이나 집필의 경위와 과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독자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한다는 점이다. 베스트셀러인 <다빈치 코드>도 오역이 있어 중간에 감수를 받아 감수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외국의 경우 번역 투명성을 철저하게 유지해 작가들의 자리를 확보하게끔 한다.

한국의 작가들은 흔히들 자신을 ‘글쟁이’로 폄하해 표현하곤 한다. 창조행위를 하는 작가가 대접을 받지 못하는 한 출판계의 앞날은 밝을 까닭이 없다. 좋은 작가들이 배출되지 못하면 좋은 출판물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능력 있는 작가 빈곤의 악순환은 우리 지식 산업 전체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종국에는 독자와 출판사 그리고 우리 문화의 모든 분야가 같이 망하는 공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지식 산업의 황폐화로 입을 피해는 고스란히 수요자인 독자의 몫이다. 이번 논란이 한 특정인의 진실 게임으로 종결지을 것이 아니라 출판 풍토의 개선을 위한 발전적 토론 및 승화로 재고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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